목차
- 영화 ‘모노노케 히메’로 보는 자연과 인간
- 환경 보호의 착각, 환경 양치기
- 공존을 위한 첫 걸음, 00
Editor 정탄 선생님과 제자 Career (현) 제이티스쿨 대표
생수 한 병을 사 물을 들이마시고는, 라벨지를 떼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일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 보면 가끔은 끈적거림을 참아가며 라벨을 떼어낸 투명 페트병을 손에 꽉 쥐고 있는 제가 초라해지는 기분입니다.
저런 사람들이 가득한데 굳이 분리수거를 하는 이유가 있나 생각까지 들기도 해요.
심지어 미국은 국립 공공시설에서도 쓰레기통이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분리수거를 할 수 없는 일반 쓰레기통이요.
우리 인류는 점점 자연, 그리고 숲과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1. 모노노케 히메, 자연과 인간의 갈등
모노노케 히메에서 아시타카는 숲을 지키려는 재앙신에게 저주를 받은 채로 인간과 숲, 자연의 공존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숲에 빛이 들고 들개가 잠잠해지면 풍요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어. 사슴신의 피는 나병 환자들도 고칠 수 있어.”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대표격인 에보시는 손에 라벨지를 뗀 투명 페트병이 아닌 단단한 총을 쥐어 들었고 이내 숲에 한 발, 두 발을 쐈습니다.
그렇게 인간과 숲의 갈라짐은 인간에게도, 숲에도 흉터를 만듭니다.
다시는 없어지지 않을 흉터를 말이에요.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인류는 환경주의와 생태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아파트 베란다 쪽에 있는 뒷산을 밀고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아파트 주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뒷산을 개발하지 말라고 하며 완강히 거절했지요.
하지만 오늘날에는 뒷산을 밀고 6층 규모의 정형외과 의원이 들어선다고 하면 발 벗고 나서며 신나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멀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인간은 터널을 곳곳에 만들며 산에 개입을 극대화하고 도로변에 얇디얇은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고 말하게 된 것일까요?
언제부터 인간은 자연과 시시가미와 갈라진 채로 가릴 수 없는 흉터를 석유로 만들어진 옷으로 애써 가리고 있는 걸까요.
2. 환경 양치기?
환경 양치기는 일반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거나 자연을 가꾸는 활동을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비판적인 측면에서는 환경 보호의 핵심을 무시한 채 겉치레로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는 그런 ‘환경 양치기’라는 표현을 쓰며 룰라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했습니다.
“부자 나라들은 아주 고상하고 그럴싸한 조약을 들이밀며 아마존 삼림 파괴를 막자고 웅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기네 나라에서는 모든 숲을 몽땅 파괴하지 않았는가?”
이 말과 같이 어쩌면 모노노케 히메에서 에보시가 숲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이유도, 페트병에 딱 달라붙어 뗄 때는 손이 끈적끈적해지기까지 하면서 뜯는 제가 미운 이유도 이런 환경 양치기로 인한 필연적인 환경 파괴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친환경, SDG, 재활용, 탄소 중립 같은 그럴싸한 단어들은 모두가 다 동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어떤 누가 ‘북극곰이 살 곳을 지켜 주세요’라는 공익광고에 반기를 들까요?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은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이익과 발전, 진보를 위해서는 환경 파괴는 어쩔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라 “불 꺼, 옷 입지 마, 종이 빨대나 써!”와 같은 강압적인 환경 양치기 소년, 소녀에 의해 반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의 하원의원과 환경보호 민간단체의 대표가 토의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대표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자 하원의원은 “당신이 입고 있는 옷, 안경, 텀블러는 플라스틱이 아닌가요? 플라스틱을 안 쓰고 환경을 보호하는 건 누구나 다 바라요. 허나 실질적인 대책이 있어야죠”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죠.
이처럼 대책도, 실질적인 방법도 없는 녹색주의자들로 인해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더 페트병을 그냥 버리고 맙니다.
학교에서 저는 학생회로서 하는 봉사로 ‘지구 지킴이 캠페인’을 하게 되어 8시부터 8시 50분까지 팻말을 들고 서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문을 지나치는 학생들에게 “지구를 지키자!”라고 말하는 제 모습은 꽤 우스웠어요.
석유로 만들어진 나무 한 그루와 맞먹는 후드 집업과 교복을 입은 채로 ‘지구가 아파요’ 문구가 새겨진 종이, 그리고 플라스틱 팻말을 들이밀며 남에게 환경을 지키라니.
저는 제가 그렇게 싫어하던 비환경주의자이자 녹색주의자였습니다.
3. 공존을 위한 첫 걸음, 양
아시타카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선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저주가 새겨진 오른팔과 앙상하게 한그루만 남은 나무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공존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에보시는 그것을 부정하고, 모노노케 히메는 “널 좋아하지만 인간은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죠.
이런 갈라짐은 분명히 흉터가 져서, 앞으론 영영 지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우리 인간들은 생태주의적으로 분명히 조화롭게 자연과 녹아들 책임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또 다른 흉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아시타카가 말하는 대로 ‘양보’라는 걸 해야만 합니다.
때로는 바로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터널을 만들지 않고 S자로 빙글빙글 돌면서 주행한다거나, 조금 비위생적이더라도 카페에서 빨대를 먹은 후 빨대를 반납하여 재사용을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물론 불편하고 마치 손에 묻은 끈적거리는 접착제 자국처럼 찝찝할 겁니다.
하지만 시시가미와 그 숲에 살고 있는 수많은 나무와 동물들, 그리고 그 주위를 맴도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라도 양보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시타카의 말처럼, 우리도 불편함을 감수하는 작은 행동을 통해 더 나은 공존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흉터도 가리려고만 하지 않고 당당히 내보여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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